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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민주항쟁 -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

♬☺♥☘∂ 2020. 6. 9.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보면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우리가 알고 있는 이 헌법은

1987년 10월 29에 전부개정된 것인데

헌법이 전부 개정되었던

1987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영화 '1987' 을 보면

조금이나마 그때의 장면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영화 '1987'은

2017년 개봉한 장준환 감독의 장편영화로,

1987년 6월 항쟁의 배경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중심으로

민주화를 열망한 대중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인데

아직 보지 못한 분들은

꼭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6·10 민주항쟁 기념일

 

6·10 민주항쟁은

1979년 12·12사태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군사정권의 장기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일어난

범국민적 민주화운동입니다.

 

1987년 1월 14일

한번쯤은 들어봤을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이었던

박종철군을 불법체포하여

고문하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1월 15일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단순 쇼크사인 것처럼 발표를 했는데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

박종철군의 친구의 소재를 묻던 중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 부속 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하였다”

 

고 공식 발표합니다.

 

부검의의 증언과

언론 보도 등으로 의혹이 제기되자

사건발생 5일 만인 1월 19일에

물고문 사실을 공식 시인하게 되었고

 

학계·문화계·종교계 등 각계각층에서는

‘군사정권 유지를 위한 호헌조치 반대성명’ 등

민주시국선언을 잇따라 내놓았고,

이에 민주화투쟁 열기가 고조됩니다.

 

조직적인 은혜에도 불구하고

그해 5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의해

이 사건이 은폐·축소된 것이

밝혀지게 되었고

 

분노한 시민들과 대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였는데

당시 연세대학을 다니고 있던

이한열 군이 6월 9일 시위 도중

머리에 최루탄 파편이 박히어

사경을 헤매게 되면서

산발적이었던 민주화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게 됩니다.

 

박종철고문살인규탄 및 호헌철폐국민대회’를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개최
6월 10일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대표위원이
집권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
6월 15일까지 전개된
명동성당농성투쟁
18일 최루탄추방대회
26일 민주헌법쟁취대행진
20여 일간 전국에서
연인원 5백여만 명이 참여하여
‘직선제 개헌 민주화 촉구’를 위한
거리집회·시위·농성
6월 26일 시위에는
전국 33개 도시와 4개 군·읍 지역에서
100여만 명이 참가,
6월 항쟁 중 최대 규모를 기록
6월 29일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의
이른바 '6·29선언'이라는
직선제 개헌 시국수습특별선언이 발표

 

 

 

 

1987년 6월 10일

전국 곳곳에서 거의 동시에 시작된 시위는

20일간 매일 계속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중심이 되었으나

차츰 일반 시민들의 수가 늘어나

국민 운동으로 발전해 갔으며

 

회사원들도 점심 시간이나 업무를 마친 뒤

넥타이를 맨 채 시위에 참여해

‘넥타이 부대’라는 말까지 생겨났습니다.

 

결국 전두환 정부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굴복해

대통령 직접 선거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

구속되거나 연금된 정치 인사들의 석방

등을 내용으로 하는 6 · 29 민주화 선언

발표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헌법이 개정되었고,

국민들은 16년 만에 대통령을

자신의 손으로 뽑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우리는

지금의 민주주의 사회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는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날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하여

그날을 되새기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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